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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독자투고
좌충우돌 농촌생활기 1편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4년 04월 24일(목)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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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령
나에게 있어 농촌에서의 생활은 산소를 흡입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농촌은 삶에 지치고 부족함 투성이인 나에게 ‘희망’ 이라는 산소를 흡입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2010년 11월 24일 겨울문턱에. 나는 솔향기 가득한 이곳 청송으로 귀농을 결심하고 터를 잡았다. 15년 전부터 알게 된 청송. 삶의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한 번씩 청송에 갔었다. 나는 톡 쏘는 맛의 달기약수가 좋고, 주산지와 주왕산의 절경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터를 잡은 곳은 중탕다리를 건너 웃테네길로 1.5Km 산길을 들어가 양갈래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좌측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이는 낡은 집이다. 웃테네골에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세 가구가 살고 있다. 터를 잡던 첫 날, 이삿짐을 옮기며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한숨 돌리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후아~’ 맑은 공기가 가슴속 깊이 들어왔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반짝반짝... 왕방울만한 별들이 눈앞에 가득 했다.
‘우와~’ 청송에서의 첫 날을 아름다운 밤하늘과의 만남으로 지새웠다. 문득 어린 시절 처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꼈던 기쁨과 감격이 떠올랐다. 전율이 오가며....찡~한마음에 나도 모르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나의 농촌생활의 첫날은 시작되었다.
산골짜기 외딴집에 첫눈이 내렸다. 도시에서 보던 눈과는 완전 달랐다.
“송이송이 ♬~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 눈을 맞으며 덩실덩실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
즐거움도 잠시 농촌생활은 여유가 없었다. 여러 날 눈이 내리고 쌓이니 차도 오갈 수 없게 되었고, 난데없이 무인도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제설차가 골짜기까지 올라오지 못하니 쌓이는 눈을 직접 치워야만 했다.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약수탕 까지 약 50분정도를 걸어 내려가야 했고, 난방을 위해 땔감을 마련해야 했다. 처음 사용해 보는 나무보일러! 자꾸 불씨가 꺼지고 불이 잘 붙지 않아 고생도 많이 하고 땔감이 부족하여 겨우 추위만 피할 정도밖에는 불을 지피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농촌생활이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새로움이었다.
2011년 1월 28일 아침. 식수로 사용하던 지하수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며칠 전부터 물을 틀면 흙물이 섞여 나오더니... 지하수가 고갈 되어서인지? 얼어서인지?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되었다.
눈이 또 내렸다. 내리는 눈이 바라보니 괜히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아침, 간단히 짐을 챙겨 마을로 내려왔다. 우선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하나 잡기로 했다. 다행히 청송은 관광지라 숙박시설이 많이 있어서 인근 모텔 사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선 한 두 달 정도만 사용하기로 하고 임시로 방을 하나 빌렸다. 집 관리도 하고 추위에 보일러가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겨우 내내 눈 덮인 산길을 오가며 봄이 오길 기다려야 했다.
2011년 봄. 드디어 봄이 왔다. 어설프게 시작된 나의 농촌생활의 봄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힘겹게 겨울을 지내고보니 문제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집수리가 필요했다. 귀농을 하며 구입한 집은 6.25때 피난민들이 임시로 살았던 낡은 흙집이었다.
그 집은 내가 가기 전까지 주인이 다섯 번씩이나 바뀌면서도 별 수리도 안했는지 지붕도 여기저기 새는 곳이 많고, 문도 짝이 안 맞고, 벽이며 문틈이며 바람이 솔솔 스며들어왔다. 쥐들도 긴 겨울동안 추위 피할 곳이 없었는지 집안에 들어와 진을 치고 천정이며 주방이며 들락날락…화장실도 외부에 재래식 변소 하나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하수가 끊겨 물을 구할 수 없으니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날이 풀리자마자 우선 새는 지붕부터 수리를 시작 하게 되었고 어영부영 집수리에 시간을 보내다보니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파종시기를 그만 놓치게 되었다. 파종 시기는 좀 늦었지만 농사를 시작하게 된 나는 구체적인 농사 계획도 없이 허겁지겁 모종을 구해다가 심기 시작했다.
“농사짓기가 쉽지 않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나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편은 다음 23호에 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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