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11-03 04:53:2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뉴스 > 기자수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우선 사람을 살려야
- 석보 삼의리 ‘삼형제’ 전설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4년 12월 26일(금) 11:24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얘야, 만약 네가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양땅 산밑마을이라 불리는 곳으로 한 총각이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 왔어.
“어머니, 이곳은 땅이 기름져 보입니다. 또 산이 아늑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기 일곱 봉우리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도록 합시다.”

“오냐, 오냐. 나는 네가 좋다면 어디나 다 좋다.”
“네,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잘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총각은 우선 칠성봉(七星峰) 바라보이는 바위 옆에 기둥을 세우고 풀을 베어 얹어 움막부터 지었어.

‘연세 많으신 어머니가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총각은 이 생각뿐이었어.
‘그래야 돌아가신 아버지도 마음이 편하실 거야.’

저녁때가 되어서야 겨우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움막이 지어졌어.
그 뒤, 총각은 어머니가 편하도록 움막을 조금씩 더 넓혀가는 한편 부지런히 일을 했어.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다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아버지는 편찮으셔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바람에 집도 헐값에 빼앗기고 어머니는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되셨다.’
총각은 날마다 두 손을 모으며 다짐하였어.

그러자 멀리 있는 마을에서도 이 총각 소문이 퍼져나갔어.
“저기 산밑마을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한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농사를 짓는데 대단한 효자라고 해.”

“그래? 효자라면 언젠가는 복을 받을 거야.”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그런데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졌어.
“아, 어머니가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총각은 날마다 뒷산에 올라 약초를 캐다 어머니에게 달여 드렸어.
“애야, 네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밭일만도 힘들 텐데 밥하고 빨래하고 또 약까지 달이느라…….”

“아닙니다. 어머니! 아무 걱정 마시고 어서 기운이나 차리십시오,”
총각은 늘 웃는 얼굴로 어머니를 위로하였어.

어느 해 초겨울이었어.
그 날도 총각은 뒷산으로 갔어.
‘어,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 말려둔 도라지며 산나물이 있기는 하지만 무얼 좀 더 구해 와야겠어. 무엇이 좋을까? 옳지, 마른 버섯을 따다가 국을 끓여드리자.’

총각은 참나무 고개로 발길을 옮겼어. 이곳은 길이 험해서 보통 때에는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어.
‘쓰러져 말라버린 참나무 줄기를 찾으면 표고가 있을 거야.’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어.

‘서둘러야 하겠는걸. 이러다가 갇히면 어머니가 걱정하실 거야.’
총각이 참나무 고개에 막 이르렀을 때였어.
‘아니, 저게 뭐지? 곰인가?’

나무 밑에 무엇인가 엎드려 있었어.
‘그런데 꼼짝도 하지 않네? 죽었는가?’
총각은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어.

‘어, 사람 같은데!’
그 사람은 다 떨어진 천이지만 얼마나 휘둘렀는지 얼굴도 보이지 않았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총각이 아무리 불렀지만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어.
‘안 되겠다. 우선 업고 내려가자. 죽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기 그대로 버려둘 수는 없다.’
총각은 그 사람을 업고 집으로 내달렸어.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우리 집으로 가서 몸을 녹입시다.”
총각은 계속 외쳤지만 그 사람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어.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많이 쌓였어. 바람도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때렸어.
총각은 몇 번인가 엎어질 뻔했지만 기어이 집에 닿았어.

둘둘 말린 천을 풀어보니 앳된 처녀였어.
총각은 어머니와 함께 처녀에게 뜨거운 미음(米飮)을 먹이고 손발을 주물러주며 간호를 하였어.

사흘이 지나서야 처녀는 겨우 정신을 차렸어.
“어찌 된 일이오.”
“네, 저는 이 산 너머 바닷가 마을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왜구들이 쳐들어와 마을을 불태우고 곡식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산으로 도망쳐서 고개를 수도 없이 넘었습니다. 그 뒤에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쓰러졌어.

어머니가 말했어.
“얘야, 아무래도 이 아가씨는 하늘이 우리에게 보낸 것 같구나. 우리 식구로 삼도록 하자.”
“네, 우선 기운부터 차리게 한 다음 물어보도록 하지요.”
총각은 정성을 다해 처녀를 보살폈어.

처녀는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설 수 있었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나와 혼인해 주시오. 어머니와 나는 그대가 우리 집에 온 것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있소.”

마침내 총각은 처녀의 허락을 받아 혼인을 하였는데, 아들을 셋이나 낳았어.
총각은 첫아들 이름을 ‘의남(宜男)’이라고 지었어.
“마땅할 의(宜), 사내 남(男)!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있어.”
총각은 아들 삼 형제를 잘 키웠어.

그러자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자꾸만 이 마을로 살러왔어.
“이곳은 살기 좋은 곳이야.”
“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지.”

마을은 점점 커졌어.
그래서 중간마을도 생겼고 아랫마을도 생겼어.

맨 윗마을은 상삼의(上三宜)라고 불렀고, 중간마을은 중삼의(中三宜), 아랫마을은 하삼의(下三宜)라고 불렀어. 특히 하삼의에서는 사람들이 나무바가지를 많이 다듬어서 팔았다고 해서 ‘바가지점’ 혹은 ‘박점’이라고도 불렀어.

하지만 대개는 이 세 마을을 합쳐서 삼의골(三宜谷)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삼의리(三宜里)라고 해.

그래, 무슨 일을 이루려면 먼저 착한 마음부터 가져야 할 것 같구나.

○ 이 이야기는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에 전해오는 ‘삼형제’ 전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름을 지을 때 이처럼 삼중구조로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청송에도 상덕천, 하덕천이 있고, 대구에는 상동, 중동, 수성동(하동)과 상리동, 중리동, 평리동(하리동)이 있습니다.
○ 필자는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출신으로 대구달성교육장을 역임하였으며 아동도서를 70여 권 집필한 바 있습니다.
조학제 기자  
- Copyrights ⓒ청송영양인터넷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10년째 성인부 무료 지도…청송 용..
청송교육지원청·청송군 '청송도서..
2026년 청송도서관 인문학 아카데미..
영양군, 2026년 하반기‘찾아가는 ..
경북교육청, 독도의 날 맞아 ‘2026..
경북교육청, 학부모가 들려주는 책 ..
‘숨은 재산까지 추적한다’ 경북도..
수비초, 교육공동체가 하나 되는 20..
경북 농산물 유통, AI로 전환한다
2026년「영양군민상」수상자 시상

최신뉴스

꿈과 끼를 키우는 수비 4동이의 다..  
영양군, 2026년 재난대응 안전한국..  
영양우체국, 지역 장애인 위해 소..  
석보면-영양군 귀농협회, 귀농·귀..  
영양군, 민원실 폭언‧폭행 ..  
청송군, 2027년 행안부 간판개선사..  
청송군,‘교정시설 유치 추진단’..  
국립공원공단 주왕산국립공원사무..  
자연수정벌, 제20회 청송사과축제 ..  
경북 청년농업인 42명 평균 농가소..  
경북도, SNS 대상 4년 연속 수상 A..  
영양읍, (사)전아연 울산광역시지..  
영양군, 민선9기 공약 주민배심원..  
“교정시설은 영양으로!” 영양군..  
청송군 현서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  


인사말 광고문의 제휴문의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사업자등록번호: 508-08-25947/ 주소: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보로 137(서울치과 3층) / 발행인 : 권동준 / 편집인 : 조학제
mail: cynews114@naver.com / Tel: 054-872-7114 / Fax : 054-872-711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255 / 등록일 : 2013.03.19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