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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보니 잎, 지고나니 낙엽 (7편)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5년 01월 29일(목)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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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 며칠째 병원에서 특수치료를 받고 있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 새살이 돋아 날려면 몇 달이 지나야 된다고 한다. 조금만 더 잘렸으면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해병대도 못갈 뻔 했다.
모래가 입대인데 가서 이런 손가락으로 훈련 받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오늘도 병원에서 정은이랑 같이 가서 치료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정은이는 가계로 돌려보내고 대구역전의 큰형님이라고 통하는 나의 선배 철우형님을 만나러 갔다. 대구에서는 가장 주먹이 세고 대구의 직업소개소를 거의 다 관리한다는 그런 선배다.
“아니! 이게 누구야. 철혁이 아닌가? 자네가 웬일로?”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동인동 옥성집에 있는 최양을 좀 빼주십시오. 제대 후 결혼할 겁니다. 여기 돈 5만원 있습니다. 부족하겠지만......”
철우형님은 한참 생각하더니만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적은 목소리로 통화 한 후,
“알았어! 자네 집으로 저녁쯤에 연락해주겠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저녁. 드디어 연락이 왔다.
“OK! 자네 그 집에 잘 보였더구먼. 내일 아침 옥성집으로가서 데리고 가게!”
“형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야호!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이런 행운을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정은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정은이의 집인 경남 합천으로 갔다.
미리 전화를 한 탓인지 새엄마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젊으신 분이다.
진수성찬에 완전 사위대접을 해주신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흐느껴 우는 정은이를 뒤로 한 체 나는 오토바이를 힘껏 몰았다.
“은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집 떠나지 말고...오직 인내로 버티어 나가길 두손 모아 하나님께 빌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몸 건강히... 안녕......”
해병대 하사관학교 입교.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이 없는 상태에서 혹독한 해병대 훈련을 받으니 너무 힘든다. 해병대의 훈련은 기압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압으로 끝 난다. 정권 푸쉬업(업드려 팔굽혀펴기)을 연병장에서 기본 1백개 이상 한다. 주먹 쥐고 하는 푸쉬업은 엄지손가락으로 지탱해야하는데 100개하기가 너무 힘든다. 또한 총기를 다룰 때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다루기가 힘이 든다.
요즘은 메이드 인 코리아 한국에서 만든 가볍고 성능 좋은 M16이란 자동소총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미군이 사용하던 길고 엄청 무거운 M1이란 소총으로 훈련을 받았으니 견디기 어려울 만큼 엄청 큰 고통속에서 훈련을 받았다.
특히 사열준비 검사총을 할 때 노리쇠 뭉치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야 한다. 그러나 손가락 끝이 없는 나로서는 잘 눌러지지가 않아 다른 전우들 보다 노리쇠 닫기는 ‘철거덕’이란 소리가 늦게나 항상 교관들의 기압대상이 되었다.
“X새끼! 손가락 없는 병신놈이 해병하사로 왜 들어왔어! 너 같은 놈은 뒈지도록 맞아야 돼!” 하면서 발길질, 주먹질, 빳다등 동료들보다 몇곱절 더 맞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오직 정은이를 생각하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1여년 뒤!
드디어 피와 땀의 댓가로 빨간 명찰과 하사계급장을 단 무적해병 하사 박철혁!
첫 실무 발령지역은 연평도! 연평도는 북한 해주항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작은 섬으로 술과 여자가 없어 돈 모으기 좋다고 해서 내가 지원해서 들어 갔는 곳. 역시 연평도는 좋다. 풍랑으로 인해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한달이 돼도 외부와는 접촉이 전혀 없다. 아늑하고 포근하여 섬주민들과 모두 함께 가족처럼 지낸다.
정은이가 드디어 연평도로 면회를 왔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풍랑이 많이 치면 한나절이 걸려 연평도에 도착한다. 또한 풍랑이 심하면 배가 며칠 동안 육지로 출발 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면회객이 거의 없어 부대에서는 대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가족이나 여자 친구가 면회 오면 특별대접을 해준다.
비록 여관이나 호텔은 없지만 A급 민박 방과 숙식을 다 해결 해준다. 또한 2박 3일 정도는 특박이 가능하며 그 이상 머물게 된다면 마을에서 출퇴근 하도록 비공식 허락 까지 해준다.
-계속(8편은 다음호에 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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