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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옛이야기(청송군 편 19)
부모님 묘 옆에 초막을 짓고
- 청송읍 금곡2리 ‘초막골’ 전설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5년 07월 09일(목)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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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
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얘야, 너는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에게 참으로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옛날 어느 곳에 윤씨(尹氏) 성을 가진 한 총각이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어.
“얘야, 나는 이제 제대로 일어날 수조차 없구나.”
어느 날, 아버지가 겨우 자리에 일어나 앉으며 말했어.
“아버지, 올 여름만 잘 지나시면 괜찮으실 것입니다. 가을이 오면 먹을 것도 넉넉해질 것이니까요.”
총각의 집은 매우 가난하였어.
“이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긴단 말이냐?”
아버지는 쉬엄쉬엄 겨우 말을 이었어.
“제가 산에 가서 칡뿌리를 좀 캐어왔습니다. 이것 좀 들어보십시오.”
총각은 칡뿌리 달인 물을 아버지께 올렸어.
“아이고, 써라. 이제는 내 입맛도 변하고 말았구나. 휴우.”
아버지는 겨우 조금만 마시고 그릇을 밀어내었어.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셔요. 제가 건넛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좀 구해오겠습니다.”
총각은 짚신을 챙겼어.
“아이고, 이 가뭄에 어디에 가서 먹을 걸 구한단 말이냐? 우리가 너를 너무 늦게 낳는 바람에 못 시킬 고생만 시키는구나.”
어머니도 옆에서 눈물을 흘렸어.
총각은 이웃마을에 가서 곡식을 꾸어 볼 생각이었지만 이웃마을에도 곡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어.
‘벌써 여러 번 꾸어 염치는 없지만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총각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형편을 이야기하였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어.
‘안 되겠다. 혹시 골짜기로 들어가면 가재가 있을지 모르겠군. 냇물은 이미 다 말라버렸으니!’
총각은 뒷산 골짜기로 달려갔어.
‘이런! 골짜기 물도 다 말라버렸군.’
총각은 눈앞이 캄캄해졌어.
총각은 찔레라도 꺾으려고 넝쿨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어.
“아, 천지신명이시어.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소서.”
총각은 주저앉아 간절히 기도를 올렸어.
그 때였어.
문득 바위틈에 도라지 한 포기가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어.
“저 도라지를 캐어서 아버지께 드려야겠구나.”
그런데 바위틈이라 좀처럼 캐낼 수가 없었어.
‘어떻게 하지?’
총각은 마른 나뭇가지를 주어와 간신히 캐내었어.
‘얼른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야지.’
총각은 벌떡 일어났어.
“아, 어지러워!”
그 제서야 총각은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어.
‘이 도라지라도 좀 씹었으면 좋겠는데! 안 돼, 아버지는 지금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고 계실 텐데!’
총각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꾹 참고 집으로 왔어.
“아버지, 이 도라지 좀 드셔보셔요.”
총각은 아버지에게 도라지를 내밀었지만 아버지는 숨을 모아 쉬며 겨우 입을 열었어.
“아이고, 이제 나는 죽을 모양이다.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훌륭하게 자라서 후대 자손을 훌륭하게 키우도록 하여라.”
아버지는 마침내 총각의 손을 잡은 채 유언을 남기고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어.
“아버지, 아버지!”
총각이 슬피 울부짖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다시 눈을 뜨지 못했어.
총각은 뒷산 아늑한 곳을 찾아 묘를 썼어.
“아버지, 제가 잘 모시지 못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총각은 무덤 옆에 풀로 지붕을 이은 집을 짓고 무덤을 지키기 시작하였어.
총각이 무덤을 지킨 지 3년이 되었을 때였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총각은 아버지의 무덤 옆에 어머니의 묘도 쓰고 또다시 3년 동안 지켰어.
“아, 참으로 효자로다. 6년 동안이나 묘를 지키다니!”
사람들은 이 총각에게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옷도 가져다주었어.
그 뒤, 사람들은 이곳에 총각이 부모 묘를 지키기 위해 풀로 지은 움막이 있었다 하여 이곳을 ‘초막골’이라고 불렀어.
“우리도 초막골에 가서 살자. 그 마을에는 훌륭한 효자가 있다더라.”
사람들은 멀리에서도 이 효자가 사는 마을로 이사를 오곤 하였어.
그래,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는 이야기로도 남아서 오래오래 전해지는구나.
○ 이 이야기는 청송군 청송읍 금곡2리 ‘초막골’ 전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윤씨 총각은 조선 명종 때에 이곳에 살았다고 하는데,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필자는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출신으로 대구달성교육장을 역임하였으며, 70여 권의 아동도서를 집필한 바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한국일보 제정 <한국교육자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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