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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빛낸 인물1-대구 계명대학교 ‘신일희’ 총장
계명대 ‘신일희’ 총장 대구·경북 발전의 숨은 공로자
청송의 작은 마을에서 미국 유학, 그리고 계명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15세 100달러로 혈혈단신 생선운반선 타고 미국 유학길 올라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5년 11월 04일(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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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
('신일희' 총장 인터뷰하는 모습)
계명대학교 총장, 동산장학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대구·경북 국제교류협의회 공동의장, 중국 공자아카데미 총부이사, 폴란드 명예총영사.
청송의 작은 마을인 안덕면 출신으로 계명대 총장직을 수행하며 대구·경북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고 있는 ‘신일희’ 총장의 또 다른 직함들이며 1939년생이다.
이 밖에도 신일희 총장은 스웨덴 명예영사(1999~2005), 폴란드 명예영사(2005~2012),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선수촌장,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선수총장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해 힘을 다 하고 있다.
|  | | |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
(계명대학교 본관전경)
신 총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프리스턴대 박사(독일어문학),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교수, 연세대 교수, 세계대학총장회의 이사, 폴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명예영사, 중국공자아카데미 총부이사, 폴란드국립쇼팽음악원과 중국 푸단대 등 13개 대학 명예박사 또는 명예교수, 독일 정부 대십자 공로훈장과 폴란드 정부 대십자 훈장 수훈, 프리스턴대 대학원 100주년 기념 주요동문 100인 선정 등 그동안 그가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남긴 발자취이다.
|  | | |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
(2008년 10월 폴란드 금십자 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 수훈)
신 총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부족함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해 왔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오늘 날의 그가 있기 까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험난한 삶을 살아왔다.
6·25전쟁이 끝난 다음해 1954년 6월 대구 계성중을 졸업한 그는 부모님이 마련해준 100달러를 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의 미국 유학생활은 시작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운 경험담의 연속이었다.
부산에서 생선 운반선을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2주 만에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 해안에 도착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2주 후 동부 뉴욕에 도착한 뒤 목적지인 코넷티컷주 켄트 시에 있는 켄트고교에 입학하게 된다.
|  | | |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
(계명대 입구애 설치된 '타불라 라사')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편안하게 유학길에 오른 것이 아니라 15세의 어린 나이에 혼자의 몸으로 아무런 도움 없이 한 달간의 긴 시간에 걸쳐 유학하게 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당시를 회고하며 그는 “멀미에다 망망대해에 겁도 나기도 했지만 부모님께서 뜻이 있어 미국에 가라고 했겠지라는 생각뿐 싫거나 좋다는 아무런 생각과 느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 총장은 뉴욕으로 가는 기차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양파를 넣은 샌드위치로 버텼다.
또한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던 그는 농장의 잡일부터 화장실 청소, 식당 접시닦이, 골프장 캐디 등 틈나는 대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신 총장은 유학을 마칠 때 까지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버텨냈다.
한국을 떠날 때 어머니께서 손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건네며 “어려울 때 팔아 쓰라”고 한 것이 100달러와 함께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금반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금반지를 볼 때마다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며 힘든 유학생활을 버텨냈던 것이다.
50년을 교육자로써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며 인생을 바친 ‘신일희’ 총장
4, 5, 6, 7, 9, 10대에 걸쳐 28년 동안 계명대학교 총장직 수행
‘Tabula Rasa(타불라 라사)’ “미래에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 넣을지 생각하라”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트리니티대, 하버드대, 프리스턴대 3곳의 대학에 지원해 입학허가를 받았다. 3개 대학 모두 장학금을 주기로 했지만 트리니티대 입학 조건이 가장 좋아 그 곳을 선택하게 됐다. 하버드나 프리스턴대에 진학하고 싶어 미국의 기독교 단체에 장학금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혼자 힘으로 공부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미련을 두지 않았다.
트리니티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후 프리스턴대로 진학해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이 후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교수로 임용돼 4년 동안 재직하며 대학과 대학원 재학 시에 빌린 학자금을 갚고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거쳐 1974년 계명대에 부임했다.
신 총장은 초대, 4, 5, 6, 7, 9, 10대에 걸쳐 28년 동안 계명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며 지역의 명문 사립대로 발전시켜왔다.
계명대 성서캠퍼스 본관에 들어서면 로비 정면에 백지그림이 걸려있고 그 아래 라틴어로 ‘Tabula Rasa(타불라 라사),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 까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Tabula Rasa(타불라 라사)’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라는 의미다. 미래에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 넣을지 생각하라는 의미다.
타불라 라사는 유럽 근세철학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진 말로 ‘백지상태’라는 뜻이다.
신 총장에게 ‘타불라 라사’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백지 상태를 채우는 주체는 ‘바깥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개척정신’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가 유학생활을 겪는 동안 스스로 해결하며 채워나간 ‘개척정신’으로 이해된다.
신 총장 자신을 비롯한 계명대 구성원들 모두가 다 같이 경험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백지 상태에서 하나씩 채워나가는 정신을 뜻하며 이는 계명대를 발전시키고 지탱하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신 총장의 호는 ‘행소’이다. 20여 년 전 중국 베이징 사회과학원과 교류할 당시 한 지인이 지어준 것이다. 행소 또한 타불라 라사와 함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유학 고전인 ‘중용’ 구절에서 따온 말로 군자는 현재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 엉뚱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2년 10대 총장 취임사에는 이 모든 정신과 뜻이 담겨 있는데, 매우 절제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대학의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긴장과 고통을 함께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깊은 통찰과 희망이 담겨있다. 그는 “우리 스스로를 고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깥에서 돌봐 줄 울타리가 없으므로 홀로 서야 하며 모든 구성원이 주인정신으로 리더십을 실천하면서 힘써 노력하는 길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뜻으로, 새삼 그의 비장한 의지까지 느껴진다.
그는 어쩌면 1954년 15세 때부터 헤쳐 나온 사면초가 상황에서도 자신을 단련하고 실력을 키워온 절박한 경험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묵묵히 타불라 라사 정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899년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에서 오늘날의 계명대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동안, 이를 이끌고 있는 신일희 계명대 총장.
그의 삶에서 ‘타불라 라사’와 ‘행소’를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지와 사명감을 엿볼 수 있었다.-취재 조학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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