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11-03 04:50:0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뉴스 > 기자수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우리 고장 옛이야기(청송군편 28)
동아야, 들판을 밝히자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5년 12월 24일(목) 14:49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파천면 덕천리 ‘송소고택(松韶古宅)’ 전설

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얘야,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겠지? ‘선을 쌓는 집안에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남아돈다.’라는 뜻이란다.

옛날 어느 곳에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어.
‘아,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허기를 면해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구나.’
그 해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모두들 걱정하고 있었어.

“이 사람아, 어제는 읍내 마을에서도 입에 든 음식도 빼앗아 먹으려고 주먹으로 얼굴을 쥐어박았다 하는 소문이 있네.”
“그래, 이렇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 다 굶어죽을 걸세.”
사람들이 걱정을 하였어.

이 농부는 농사지을 땅이 하나도 없었어.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궂은일을 해주고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였지.
“제발 저에게 농사지을 땅을 좀 빌려주십시오.”
이 농부는 땅을 얻으려고 이곳저곳 헤매었어.

그러나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였어.
“이 사람아, 우리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네. 다른 집으로 가 보게.”
‘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농부는 생각 끝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어.
“그래, 이 고개를 넘어 호박골로 가서 논밭을 일구어보자.”
호박골은 디딜방아의 호박처럼 골짜기가 좁고 깊다 하여 부르는 이름이었어. 계곡물은 졸졸 흘렀지만 나무가 우거져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

그러나 이 농부는 한 그루씩 나무를 베어내고 계곡 기슭에 밭을 일구었어.
그 밭에 옥수수도 심고 콩도 심었어. 그런데 노루들이 내려와 줄기를 홀라당 먹어치웠어. 그래도 조금씩 밭을 늘려갔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그 날도 밭일을 하고 있는데 웬 스님 하나가 간신히 밭둑까지 기어오더니 그만 쓰러지고 말았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안 되겠다.”
농부는 스님을 업고 집으로 향했어.

집이래야 다 쓰러져가는 움막집이었어.
“스님. 정신 차리세요.”
농부는 스님의 입에 물을 넣어주는 한편, 온몸을 주물러 정신을 차리게 하였어.
이윽고 스님이 눈을 떴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열흘이 넘도록 간호를 받은 스님은 농부에게 말했어.
“나는 떠돌아다니는 중이오. 하지만 묏자리는 좀 볼 줄 아오. 여기로 오다가 두 자리를 봐 두었는데 한 자리는 자손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를 자리이고, 또 한 자리는 대대로 수천 석을 거둘 명당이오. 두 자리 중에 어느 것을 택하겠소. 두 자리 다 좋지만 사람이 다 누릴 수는 없는 법, 한 자리만 가질 수 있소.”

“아이고,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사양하지 마시오. 그렇다면 그 두 자리 중에서 재물이 많이 나는 자리를 택하시오. 재물이 있으면 무슨 일이나 쉽게 이룰 수 있을 테니 말이오.”

스님은 그 농부를 데리고 천 석 부자가 될 자리로 안내하였어.
“고맙습니다. 훗날 상을 당하면 이곳에 산소를 쓰겠습니다.”
농부는 감사의 인사를 올렸어.

스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밭둑 옆 소나무 밑에 쓰러져 있는 한 청년을 보았어.
“여보게, 정신 차리게.”
이 청년도 얼마나 굶었는지 뱃가죽이 등에 붙어있을 정도였어.

농부는 그 청년을 업고 집으로 왔어.
농부는 또 정성을 다해 그 청년을 간호하였어.
이윽고 이 청년은 정신을 차리자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하였어.
“여보게, 자네 집이 어디인가?”

“지금부터는 여기가 제 집이구만요. 저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떠돌아다녔기에 부모님 얼굴도 몰라요. 고향도 어디인지 몰라요. 그저 헤매다가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구먼요.”
“그럼, 이름은?”

“이름도 몰라요. 아주 어렸을 때에 ‘봉아, 봉아!’ 하고 불리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주 까마득해요.”
“그래, 그럼 자네 이름을 ‘봉아’라고 하겠네. 자네가 우리 집에서 함께 일한다고 하니 그저 고맙기만 하네. 나는 지금부터 자네를 내 아들처럼 여기겠네.”
“네, 고맙습니다.”

농부는 봉아와 함께 열심히 일을 했어.
그래서 호박골 양쪽에 넓은 들판을 일구었어.
그 뒤, 농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스님이 일러준 터에 묘를 썼어. 그래서인지 농부는 점점 부자가 되었어.

농부는 호박골에서 처음 살던 덕천으로 넘어 올 꿈을 꾸며 더욱 열심히 일했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 농부의 7대 후손은 호박골에서 덕천으로 넘어와 커다란 기와집을 지었어. 그 집이 바로 오늘날의 송소고택이야. 송소는 그 집을 지은 주인의 호이고, 고택은 옛집이라는 뜻이지. 그리고 호박골 입구의 기름진 들판은 함께 일한 봉아의 이름을 따서 ‘봉아들’이라고 한단다.

○ 이 이야기는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송소고택’ 전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필자는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출신으로 대구달성교육장을 역임하였으며, 70여 권의 아동도서를 집필한 바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한국일보 제정 <한국교육자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조학제 기자  
- Copyrights ⓒ청송영양인터넷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10년째 성인부 무료 지도…청송 용..
청송교육지원청·청송군 '청송도서..
2026년 청송도서관 인문학 아카데미..
영양군, 2026년 하반기‘찾아가는 ..
경북교육청, 독도의 날 맞아 ‘2026..
경북교육청, 학부모가 들려주는 책 ..
‘숨은 재산까지 추적한다’ 경북도..
수비초, 교육공동체가 하나 되는 20..
경북 농산물 유통, AI로 전환한다
2026년「영양군민상」수상자 시상

최신뉴스

꿈과 끼를 키우는 수비 4동이의 다..  
영양군, 2026년 재난대응 안전한국..  
영양우체국, 지역 장애인 위해 소..  
석보면-영양군 귀농협회, 귀농·귀..  
영양군, 민원실 폭언‧폭행 ..  
청송군, 2027년 행안부 간판개선사..  
청송군,‘교정시설 유치 추진단’..  
국립공원공단 주왕산국립공원사무..  
자연수정벌, 제20회 청송사과축제 ..  
경북 청년농업인 42명 평균 농가소..  
경북도, SNS 대상 4년 연속 수상 A..  
영양읍, (사)전아연 울산광역시지..  
영양군, 민선9기 공약 주민배심원..  
“교정시설은 영양으로!” 영양군..  
청송군 현서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  


인사말 광고문의 제휴문의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청송영양인터넷뉴스 / 사업자등록번호: 508-08-25947/ 주소: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보로 137(서울치과 3층) / 발행인 : 권동준 / 편집인 : 조학제
mail: cynews114@naver.com / Tel: 054-872-7114 / Fax : 054-872-711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255 / 등록일 : 2013.03.19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학제